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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AM-AM 케이블?

어느 사이트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앞뒤 사정은 생략하고, USB 케이블 두 개를 잘라 이어서 AM-AM 케이블을 만들어도 되냐는 질문이다. 참고로 AM-AM 케이블은 양쪽 끝이 타입A 플러그(숫놈, Male)으로 된 것이다. 반대로 흔히 연장선이라 부르는 한쪽 끝이 타입A 리셉터클(암놈, Female)으로 된 건 AM-AF 케이블이다.

음... 뭐 물리적으로 못 만들 것은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중에 시판중인 케이블 중에 이런 물건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알리익스프레스 등을 찾아보면 없는 것도 아니지만, USB와는 전혀 상관없는 PCI-Ex 라이저카드 (채굴용) 정도에서나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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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눈썰미가 있다면 알겠지만, 이런 물건은 USB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냥 라이저카드를 연결하는데 있어서 가장 만만한게 USB 케이블이라서 가져다 쓰는것일 뿐이다.

여하튼. 그럼 왜 AM-AM 케이블은 없는걸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일부러 만들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USB는 두 개의 기기를 1:1로 연결한다. 컴퓨터↔마우스, 컴퓨터↔프린터, 컴퓨터↔휴대폰, 컴퓨터↔외장하드 뭐 이런 식이다. 허브를 끼워서 여러개를 연결하기도 하지만, 결국 컴퓨터에 다른 장치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다를 것이 없다. 이 때 1:1로 연결하는 장치 중 한 쪽을 호스트 장치, 다른 한 쪽을 확장 장치로 구분한다. 대체로 컴퓨터가 호스트 장치이고, 마우스 키보드 프린터 이런게 확장 장치이다.

USB 표준에서는 호스트 장치는 타입A 포트를 사용하고, 확장 장치는 타입B 포트를 사용하도록 정했다. 이렇게 하면, 논리적으로 AM-BM 케이블만으로 장치 연결을 완료할 수 있으며, 연장 목적으로 AM-AF 케이블만 만들면 된다. 따라서 컴퓨터에는 타입A 포트가 주루룩 달리고, 프린터는 타입B 포트를 달고 나온다. 물론 위 규칙에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 조합도 허용된다. USB 메모리 스틱이나 마우스, 키보드처럼 USB케이블 일체형으로 나오는 장치는 확장 장치임에도 타입A 플러그를 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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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서. 그럼 왜 AM-AM 케이블을 만들지 말라고 했을까. 이런 케이블이 존재하면 문제가 되니까 일부러 만들지 말라고 한 것이다. 무슨 문제가 있길래?

위에서 말한 것처럼, 타입A 포트를 사용하는 장치는 호스트 장치이다. 그런데, USB는 호스트 장치가 확장 장치에 전원을 공급하도록 되어 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고속충전 때문에 3A까지 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럼 호스트 장치와 호스트 장치를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 전기 장치는 역방향 전류를 감당하지 못한다. 운이 좋다면 그냥 컴퓨터가 꺼질 것이고, 운이 나쁘면 컴퓨터가 터질 수도 있다. AM-AM 케이블이 흔히 사용된다면? 호스트 장치와 호스트 장치를 연결하는 사고가 빈발할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용자에게 "이렇게 쓰면 안된다"고 교육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냥 포트 모양을 구분하여 잘못 연결하지 못하도록 하는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나온 것이다.

때로는 하나의 장치가 호스트로도, 확장장치로도 기능할 수 있다. 이런 장치를 듀얼 롤 장치라고 한다. 예를 들어 조금 비싼 프린터는 USB메모리스틱이나 디지털카메라를 연결하여 컴퓨터 없이 사진을 출력할 수도 있다. 이 때 프린터는 컴퓨터와 연결할 때에는 확장 장치로, 디지털카메라와 연결할 때에는 호스트 장치로 작동한다. 이런 경우, 프린터는 타입A 포트와 타입B 포트를 모두 구비하고, 상황에 맞추어 사용한다. 컴퓨터와 연결할 때에는 타입B 포트를 사용해야 하고, 카메라와 연결할 때에는 타입A 포트를 사용하는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 휴대용 보조배터리가 있다. 배터리 충전용 포트는 마이크로B 포트를 사용하며, 다른 기기에 전원공급용 포트는 타입A 포트를 사용한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니, 국내에서도 IP타임 NAS중 극히 일부 초기모델 중에는 타입A포트 옆에 스위치를 달아서, 스위치 선택에 따라 호스트 장치로도 확장 장치(컴퓨터에 연결하여 USB 외장하드처럼 사용)로도 사용가능하게 한 사례는 존재한다. 당연히 번들 케이블로 AM-AM 케이블을 제공하였다. 다만 좋은 구현 사례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장비는 금세 도태되었다. 굳이 NAS를 USB 외장하드로 연결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써야 한다면 포트를 하나 더 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어? 컴퓨터 두 대를 연결해서 파일 전송하는 USB AM-AM 케이블이 있는데? 삼성에서도 노트북에 번들로 주던데? 아마도 다음 사진같은 물건을 언급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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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기를 잘 보면 오른쪽 플러그의 부피가 왼쪽보다 월등히 큰 것을 알 수 있다. 저 부분을 열어보면, USB 네트워크 어댑터 기능을 하는 회로가 숨어있다. 즉, 저 케이블은 외관상 AM-AM 케이블이지만, 회로도를 까보면 AM-BM 케이블 + 네트워크 어댑터 + BM-AM 케이블로 구성된 물건이다. 중간에 네트워크 어댑터가 끼워져 있으니, 호스트 장치 두 대를 직결하는 물건이 아니고 따라서 문제가 없다.

그런데, 휴대폰 등 OTG장비가 보급되면서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런 장치 또한 듀얼 롤 장치로 기능하는데, 소형 장치이다보니 포트 두 개를 갖추기 부담스러운 것이다. 분명 미니A와 미니B는 모양이 다르고 리셉터클이 호환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하여, 미니AB 리셉터클을 만들었다. 이 특수한 리셉터클은 미니A 플러그와 미니B 플러그를 모두 연결할 수 있도록 모양이 되어 있다.

그럼 내가 꽂은 플러그가 미니A인지 미니B인지 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구분하려고 미니 포트는 ID핀을 추가하여 총 5개 핀으로 구성된다. ID핀이 접지되어 있으면 미니A 플러그이고,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미니B 플러그이다. 이제 OTG장비는 하나의 미니AB 포트로 호스트로도, 확장장치로도 작동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미니AM-BM 케이블은 활용도가 극히 떨어져서 사용하지 않고, 미니AM-AF 젠더(OTG젠더)를 물려서 AM-BM 케이블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휴대용 장치가 점점더 소형화 되면서 미니 타입은 시장에서 빠르게 사장되었고, 그 자리는 마이크로 타입으로 교체되었다. 마이크로 타입은 애당초 마이크로AB 리셉터클과 마이크로B 리셉터클만 존재한다. 휴대단말기가 호스트로만 기능하는, 즉 마이크로A 리셉터클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마이크로AB 리셉터클은 보급에 실패하였다. 시장에 나온 거의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마이크로B 리셉터클임에도 OTG젠더를 물려서 호스트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실 이건 USB 표준과 호환되지 않는 비표준 동작이다. 그냥 시장 표준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쓰는거지.

현재는 휴대용 장치에서 타입C를 도입하는 추세이다. 타입C는 포트의 물리적인 모양새 대신, 두 장치가 연결될 때 협상 과정을 통하여 어느 쪽이 호스트로 기능하고 어느쪽이 확장 장치로 기능할지를 정하게 된다. 비로소 케이블의 방향성을 신경쓸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필요한 경우, 이미 연결된 상태에서 두 장치가 역할을 바꿀 수도 있고, 전력 공급 방향을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역할을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 두 대를 연결하여 왼쪽 스마트폰은 보조배터리 마냥 오른쪽 스마트폰을 충전해 주고, 동시에 오른쪽 스마트폰은 파일서버 처럼 기능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