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들을 권리를 돌려주세요
길을 다니면서, 집에서 조용히 앉아서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이어폰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현재 판매중인 이어폰의 대부분은 지름 3.5mm TRS 내지는 TRRS 잭을 사용합니다. 흔히 3.5파이 단자라고 부르지요.
이어폰을 컴퓨터에 연결할 때에도, MP3나 PMP에 연결할 때에도 우리는 3.5mm 단자에 이어폰을 연결하였습니다. 2009년 아이폰이 국내 출시된 이후로는 휴대폰에 연결할 때에도 3.5mm 단자가 시장 표준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수의 IT 기기가 휴대폰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휴대폰으로 노래를 듣고, 동영상을 보며, 웹서핑을 하고, 연락을 합니다. 혹자는 업무도 휴대폰으로 진행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휴대폰에 점점 이어폰을 연결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2016년에 애플 사에서 아이폰7을 출시하면서 3.5mm 이어폰 단자를 제거하였고, 이후 많은 업체에서 3.5mm 이어폰 단자를 제거하였습니다.
삼성전자에서도 차기 갤럭시 시리즈에서 3.5mm 이어폰 단자를 제거할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제조사들의 논리는 한결같습니다.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라. 무선이 유선의 음질을 따라잡았으며, 무선이 더욱 편리하다는 것입니다. 제 귀는 고물이라 음질은 딱히 모르겠으나, 거추장스러운 선이 없는 무선 이어폰이 편리한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무선 이어폰은 비쌉니다. 애플 사에서 발매하는 에어팟 제품은 정가 21만 9천원입니다. 삼성 기어 아이콘X는 정가 22만원입니다. 많이 판매되는 유선 이어폰의 가격이 3~5만원 선임을 감안하면, 4배에서 7배 이상 비싼 가격입니다. 게다가 저렴한 이어폰은 1만원 대에서도 구매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무선 이어폰은 분실 위험성도 크지요.
혹자는 말합니다. 이어폰 변환 어댑터를 사용하면 된다고 말이지요. 글쎄요. 애플 사는 아이폰7에서 3.5mm 단자를 제거하면서, 3.5mm 변환 어댑터를 같이 제공하였습니다.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음악을 들을 수 있었지요. 물론 노래를 들으면서 충전을 할 수 없다는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애플 사는 2018년에 아이폰Xs를 출시하면서, 더 이상 변환 어댑터를 같이 제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존의 아이폰7, 8, X에서도 똑같이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제 3.5mm 유선이어폰을 가진 사람이 음악을 들으려면 1만 2천원을 주고 변환 어댑터를 추가로 구매해야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애플 사는 서드파티 악세사리 생산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저렴한 제품이 나올 가능성도 낮습니다.
삼성 갤럭시S 시리즈에서도 3.5mm 규격이 제외되면, 당분간은 3.5mm 이어폰 변환 어댑터를 제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구히 제공하지는 않겠지요. 1~2년 후에는 제공을 중단할 것입니다.
그나마 갤럭시S 시리즈는 USB C를 사용합니다. 표준 규격이므로 조금 저렴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추가적인 지출이 필요하다는 점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3.5mm 단자는 1950년대에 설계된 이후로 70년 가까운 시간동안 소형 오디오 장비를 연결하는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전세계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수십년은 계속 사용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휴대폰 제조사들은 3.5mm 이어폰 단자를 제거하고 20만원을 호가하는 무선 이어폰을 구매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게 싫으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어댑터를 사용하라고 합니다. 그나마도 어댑터를 사려면 돈을 내라고 하고 있지요.
돈 없는 사람은 더이상 휴대폰으로 노래를 들을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환영할 만한 것이고, 언젠가는 유선 이어폰 시대가 막을 내리고 무선 이어폰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만, 그 날이 당장 내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휴대폰 제조사들이 3.5mm 이어폰 단자를 계속 유지하도록 설득하여 주시고, 그것이 불가하다면 기존에 보유중이던 이어폰을 연결할 수 있도록, 기기 한 대당 의무적으로 어댑터 하나씩 제공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나서서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